동래정씨유래

HOME > 동래정씨유래

 

아래를 클릭하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득성 유래

동래 관향

정씨관향 분포도

안일호장공묘갈

복양공 묘지

 

동래 관향(東萊 貫鄕)

 

동래는 우리 씨족(氏族)의 발상지(發祥地)로서, 신라(新羅) 탈해왕 23년(서기 79년)에 거칠산군(居漆山郡)을 두었다. 살펴보건대 당시의 동래부 동쪽 10리(4㎞) 지경(地境)에 황령산(荒嶺山)산이 있으니 황령산과 거칠산의 뜻을 풀이하면 서로 같음을 알 수 있으니 이 곳이 동래군(郡)의 옛 터가 아닌가 한다.(삼국사기에서)

 

후세에 와서 지명(地名)은 오늘날의 동래로 고치었으며, 고려 때에는 울주에 속하였고 조선조 초기에 동래군(郡)이 다시 동래현(縣)으로 고쳐 현령(縣令)이 다스렸으며 동래부(府)로 승격된 후에는 부사(府使)가 다스렸으니 군(郡)의 명칭을 장산(장山) 래산(萊山) 거칠산(居漆山)봉래(蓬萊) 봉산(蓬山)이라고 도 하였다.(東萊府誌에서)

 

살펴 보건대 신라 유리왕(서기32년)이 하사(下賜)한 6부의 성(六部之姓)의 관(貫)은 그 시초가 경주(慶州)인 까닭으로 아득하고 오래 된 호적(戶籍)이 모두 경주(慶州)였으나 그 후에는관(各貫)으로 분파(分派)하였는데 정씨관향(鄭氏貫鄕) 중에 현저(顯著)한 자(者) 십여인(十餘人)으로 영남(嶺南)이 가장 많으니 동래(東萊)가 그 중 으뜸이다.

 

고려 문종 5년(1051년 11월) 주, 현(州縣) 향리(鄕吏)의 승진 규정을 마련하였는데 주,현의 관리에게 처음 주는 직책은 후단사(後壇史)이고 두번째는 병사와 창사(兵史倉史)로, 세번째는 주, 부, 군, 현사(州府郡縣史)이고 이어서 부병정, 부창정(副兵正副倉正) 부호정(副戶正), 창정, 병정(倉正兵正), 부호장(副戶長), 호장(戶長)까지 아홉단계로 되어있다. 그러한데 대대로 가풍(家風)이 훌륭한 자제(子弟)에게는 향직(鄕職)을 병사나 창사(兵史倉史)를 주고 그 보다 못한 자제에게는 후단사(後壇史)를 주었다. 또 이 밖에 공수, 객사, 약점, 급사, 옥사(公須, 客史, 藥店, 及史, 獄史) 등이 있고, 가풍(家風)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호정(戶正) 부병창정(副兵倉正)등의 관직(官職)을 주는 차이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 동래정씨는 보첩(譜牒)의 계대(系代) 이전에 훌륭한 가문을 이어 온 지가 이미 오래고 그 훌륭한 가풍을 계승하여온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할 것이다.

 

또한 살피건데 정씨의 관향을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씨족고(氏族考)에 보면 200이 넘는데 그 가운데 본관(本貫)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래 도표(圖表)와 같다.